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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상식

재앙을 부르는 검은 파도

by 지혜의열매 2023. 2. 26.

검은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를 상상해 보라. 바닷물에 둥둥 뜬 기름은 해안을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놓는다.

 

끈적이는 기름으로 파도는 하얀 포말을 만들기에도 힘겹다. 은빛으로 반짝이던 모래는 제 빛을 잃는다. 바닷가 생명체는 검은 파도의 재앙에 속수무책이다. 온몸에 시커먼 기름을 덮어쓴 채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바닷새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바다는 유류, 중금속, 방사성 물질, 합성 화학물질 등 각종 오염 물질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가운데 기름은 우리 눈에 보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오염 물질보다 관심도가 높다. 원유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에너지원이다. 그러나 순간적인 실수로 해상으로 유출되면 해양 생태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 그 뿐만 아니라 수산, 양식업에 막대한 손실을 끼치며, 해양 관광을 비롯한 해양 관련 산업 전반에도 큰 타격을 준다.

해안으로 밀려온 유출유(충청남도 태안 만리포)

2007년 12월 7일 충청남도 태안군 만리포 인근 해상에서 선박의 충돌로 유류 유출 사고가 발생해싿. 해양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사고 당시 원유 운반선 허베이스피리트(Hebei Spirit)호에서 유출된 원유는 1만 2547킬로 리터나 도니다. 약 100만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마치 내 일처럼 걸레를 들고 기름을 닦아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사고로 양식장과 어장, 해수욕장이 큰 피해를 입었고, 170킬로미터에 이르는 해안이 기름으로 뒤덮여 생태계가 훼손되었다.

 

기름유출 사고가 나면 해양생물은 어떤 피해를 입을까? 사고로 유출된 기름에 따른 직접적인 피해도 있고, 사고가 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나타나는 장기적 피해도 있다. 직접적 피해는 기름의 물리적 특성과 화학적 성분 때문에 발생한다 물리적 피해는 원유나 벙커유 등 점성이 큰 기름 때문에 질식하거나 체온이 떨어져 사망하는 경우이다. 아가미에 유출유가 달라붙으면 어류는 호흡을 못하고 질식해서 죽는다. 또 항온동물인 바닷새는 깃털에 기름이 묻으면 방수성과 보온성이 떨어져 체온 저하로 죽는다. 한 예로 1967년 유조선 토리캐년호 사고로 바닷새가 10만 마리 이상 죽었고,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 해안 석유 시설 파괴로 바닷새 수만 마리가 죽기도 했다. 해수 표면에 형성되는 기름막은 대기와 바닷물 사이에 산소 교환을 방해하기 때문에 용존산소량을 감소시켜 해양생물의 호흡에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햇빛 투과량을 줄여 해조류나 식물플랑크톤의 광합성을 방해하기도 한다.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고 (만리포 기록비)

화학적 피해는 기름에 포함된 방향족 탄화수소 등의 독성으로 사망하는 경우이다. 원유와 정제된 기름의 수용성 성분중에는 생물에 해를 미치는 각종 유독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방향족탄화수소는 지방족탄화수소보다 독성이 강하다. 벤젠이다 톨루엔 등 저분자 방향족탄화수소는 물에 잘 녹으며 생물의 세포막을 파괴하고 효소나 구조단백질에 영향을 미친다. 지방족탄화수소는 마취 효과가 있다. 일반적으로 분자량이 적은 화합물은 독성이 강하지만 사고 직후 공기 중으로 빨리 휘발하므로 그나마 다행이다.

 

원유는 탄소원자와 수소원자로 이루어진 각종 탄화수소의 혼합물이다. 분자의 구조는 직선형과 가지형 또는 방향족탄화수소처럼 고리형 등으로 다양하다. 원유는 박테리아나 효모, 곰팡이와 같은 미생물이 분해한다. 직선형과 가지형 탄화수소는 비교적 빨리 분해되고 고리형 탄화수소는 이보다 느리게 분해되며 분자량이 큰 타르는 아주 느리게 분해된다. 기름 중 탄소수가 적은 지방족탄화수소나 방향족탄화수소는 미생물이 수개월 안에 분해할수분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분자량이 크고 구조가 복잡한 탄화수소는 분해가 늦거나 미생물이 분해할 수 없는 것도 많다. 다환방향족탄화수소는 분해가 늦거나 미생물이 분해할 수 없는 것도 많다.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는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으며, 고리가 3개 이상인 것은 분해속도가 느려 오랫동안 남는다. 미생물 대신 오염물질에 대한 내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갯지렁이 종류나 연체동물이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를 분해한다고 밝혀진 바 있다. 이처럼 해양 생태계는 기름에 대한 자연정화 능력이 어느 정도 있지만, 사고로 다량의 원유가 유출될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기름은 유출되면 해수면에 얇은 막을 만들며퍼져나간다. 가벼운 기름일수록 유막의 두께가 얇고 빨리 분산된다.

유출된 기름 중에 분자량이 적은 것은 휘발하고, 수용성 성분은 바닷물에 녹으며 물에 녹지 않는 성분은 유화되어 작은 방울 형태로 된다. 유화된 기름은 마치 녹은 초콜릿처럼 보이고 아주 끈적끈적해 해안으로 밀려오면 조간대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원유 성분 가운데 무거운 부분은 타르볼(tar balls)을 형성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만큼 아주 작게 유화된 기름방울은 박테리아가 쉽게 분해한다. 그러나 큰 타르볼은 느리게 분해되어 유류 유출사고가 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영향을 미친다.

 

1989년 3월 24일 알래스카프린스윌리엄 해협에서 발생한 엑슨발데즈호 유류유출 사고의 예에서 보면 10년이 지난후에도 몇몇 조간대와 조하대(조간대의 하부)에 유출유가 남아있을 수 있다. 2010년 4월 20일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서 80킬로미터쯤 떨어진 멕시코만 해상에서 발생한 유류 유출사고도 해양 생태계와 수산업, 관광업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이 사고는 수심 1500미터 해저를 굴착하던 심해석유시추선 딥워터호라이즌호가 폭발해 침몰하면서 유정과 석유 시추 시설의 연결 파이프에 구멍이 생기면서 발생했다. 이 사태는 사고 발생 86일 만에 가까스로 원유 유출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데 성공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사람이 직접 들어갈 수 없는 깊이라 무인잠수정을 이용해 새어 나오는 기름을 막는 작업을 했는데, 이는 첨단 해양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천안함 사건에서 보듯이 수심이 몇십 미터에 불과하더라도 바닷속 작업은 쉽지가 않다. 이 경우에도 사고 후 100여 일이 흐른 뒤에도 유류 유출을 완전히 차단하지 못했다. 한정된 기름을 실은 유조선 사고와 달리 멕시코만 사고는 유정에서 기름이 계속 흘러나와 유출량이 많았고 피해 범위도 넓었다. 멕시코 만 사고의 유출량은 많았고 피해 범위도 넓었다. 멕시코 만 사고의 유출량은 1989년 알래스카 해협에서 발생한 엑슨발데즈호 사고의 20배, 허베이스 피리트호 사고의 70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엎질러진 기름을 다시 주워 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유류 유출사고로 인한 해양 생태계의 피해를 막는 최선의 방책은 사전예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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