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열수 분출공
1977년 2월 17일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 (WHOI)의 심해유인잠수정 앤빈호는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북서쪽으로 약 380킬로미터 떨어진 해역에서 잠수를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1974년부터 심해탐사를 시작해서 이곳에서 활발한 해저화산 활동의 징후를 찾아냈으며, 잠수정을 내려 보내 직접 확인하고자 했다. 앨빈호는 잠수한 지 1시간 30분이 지난 후 수심 2700미터의 바닥에 도착했다. 잠수정에 타고 있던 과학자들의 눈앞에 펼쳐진 경치는 우리가 생각했던 바닷속 모습이 아니었다.
굳은 용암 사이에서 검은 연기와 뜨거운 물이 솟아나오고, 연기가 솟아오르는 굴뚝 주변에는 어른 신발보다도 더 큰 대합과 홍합들이 다닥다닥 붙어살고 있었다.
1979년에 이곳을 다시 찾은 과학자들의 눈앞에는 더욱 신비한 광경이 펼쳐졌다. 열수분출공의 생물 다양성과 밀도는 열대 정글이나 산호초를 능가했다. 대부분 생물은 처음 보는 특이한 동물이었으며, 사람 팔뚝만 한 두께로 2미터까지 자라는 거대한 관벌레가 가장 많았다.
이렇게 깊은 바닷속에서 뜨거운 물이 분출되는 곳을 <심해열수분출공>이라고 한다.
열수 분출공은 말하자면 바닷속 온천이다. 그렇다면 열수분출공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해저 지각의 틈 사이로 스며들어간 바닷물이 뜨거운 바닷물이 뜨거운 마그마에 의해 데워지고 주변 암석에 들어있는 구리, 철, 아연, 금, 은 등과 같은 금속 성분은 뜨거운 물에 녹아들어 간다. 수온이 섭씨 350도나 되는 뜨거운 물은 지각의 틈 사이로 다시 솟아 나온다. 온도가 350도나 되는 물이 솟아 나온다고 하니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대기압에서 물은 섭씨 100도가 되면 끓어 수증기로 변하지만, 온도가 350도나 되는데도 물이 수증기로 되지 않는 것은 열수분출공이 있는 수심 2500~3000미터 깊이에서는 압력이 200~300 기압으로 높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에 녹아있던 물질이 분출되면서 주변의 찬 바닷물과 만나 식으면서 열수분출공 주변에 침전해 굴뚝을 만든다. 이 굴뚝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자라는데 높이가 수십 미터에 이르는 것도 발견되었다.
열수분출공의 발견은 생물학사에 혁명적 사건이었다. 발견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깊은 바닷속에는 생물이 많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생태계는 광합성을 해서 스스로 영양분을 만드는 식물이 있어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심해는 햇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암흑세계이므로 당연히 식물이 살 수 없다. 심해에 사는 동물이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먹이는 표층에서 죽어 가라앉는 생물의 사체이므로 먹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심해는 생물이 거의 살지 않는 사막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많은 동물이 살고 있는 심해 열수분출공 광경을 본 과학자들은 당연히 궁금했다. 도대체 이 동물들은 무엇을 먹고살까?
그 후 계속된 조사로 열수분출공 주변에 어떻게 많은 동물이 살 수 있는지에 관한 수수께끼가 풀렸다. 열수분출공에서 뿜어 나오는 검은 연기 속에는 황화수소가 많이 들어있으며, 이곳에는 황화수소가 산화되어 나오는 화학에너지를 이용해 탄수화물을 만드는 박테리아가 많이 살고 있다. 이 황화박테리아들은 식물이 광합성을 해서 탄수화물을 만드는 것과는 달리 화학합성으로 탄수화물을 만든다. 즉 심해 열수분출공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는 식물이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광합성을 하고 생태계를 부양하는 것처럼 화학합성을 해서 열수분출공 생태계를 부양한다. 이 발견으로 광합성에 의존하지 않는 생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 주변에서 보아왔던 식물을 기초생산자로 한 생태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바닷속에 있는 것이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1835년 다윈의 방문으로 진화론의 산실이 되어 생물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종의 기원>이 생물의 진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던 것처럼, 약 140년 후에 열수분출공 주변의 생물군집을 발견함으로써 갈라파고스 제도는 다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과학자들이 심해저 탐사를 계속하면서 열수분출공을 더욱 많이 발견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탐사팀도 파푸아뉴기니 인근 해역에서 새로운 열수분출공을 확인했다.
또한 열수분출공은 산업에 필요한 금속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광물자원으로 개발하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햇빛이 없고 수압이 높으며 황화수소와 같은 독성 물질로 가득 찬 척박한 환경에서도 열수분출공에 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러한 환경이 생명체가 지구상에 처음 탄생했을 때의 조건과 비슷할 것으로 추측한다.
우리는 열수분출공 주변 생태계를 연구해서 태초에 지구상에 생명체가 잉태된 환경과 과정에 대한 귀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지구 생명체 탄생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얻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열수분출공을 탐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