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조류로 신음하는 바다
바다에서 존재감을 어김없이 과시하는 불청객은 다름 아닌 적조를 일으키는 <미세조류>이다.
미세조류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식물플랑크톤으로, 해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량 발생하면 수산, 양식업에 피해를 주는 말썽꾸러기가 된다. 한 예로 2013년 남해안과 동해 남부 연안에서 발생한 적조로 양식어류가 폐사하는 등 약 250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적조란 무엇인가?
적조는 영어로 레드 타이드(red tide)라고 하며 미세조류가 늘어나 말 그대로 바닷물이 붉게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해로운 조류 대발생'이라는 영어 단어의 맨 앞 알파벳을 따서 햅(HABs)으로 부르기도 한다. 흔히 미세조류의 대발생을 모두 적조라고 부르지만, 바닷물이 꼭 붉게만 변하는 것은 아니다. 적조 생물에게 있는 색소에 따라 바닷물 색깔은 다르게 변한다. 케첩을 뿌려놓은 듯 붉게 변하면 적조, 잔디밭처럼 녹색으로 변하면 녹조, 커피를 탄 듯 갈색으로 변하면 갈조로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다. 미세조류의 대발생은 바다에서 뿐만 아니라 호수나 댐, 보로 막힌 강에서도 일어난다.
적조는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 식물인 미세조류는 영양염류, 즉 비료 성분이 많고 수온이 높으며 햇빛이 강한 환경을 좋아한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하루에도 그 수가 2~4배 늘어난다. 단세포 생물인 미세조류는 세포분열 자체가 번식이므로 짧은 시간에도 기하급수적으로 숫자가 늘어날 수 있다. 적조가 생기면 바닷물 한 방울 속에 미세조류가 수만 개체나 발견된다. 적조는 강으로부터 영양염류가 많이 흘러드는 장마철이 지난 뒤 햇빛이 쨍쨍 나면 주로 발생한다.
적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삼국사기>와 <조선왕조실록>에도 적조에 관한 기록이 있다. 예를 들어 신라시대인 639년에 동해 남부 바닷물이 붉은색으로 변하고 물고기가 죽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 초기인 1398년과 1403년에 경상도와 전라도 해안일대에 바닷물 색깔이 황색, 흑색, 적색으로 변하고 물고기가 떼로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적조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자연현상이지만 최근에 와서는 환경오염으로 규모가 커지고 지속 기간이 늘어났으며, 연안에 양식장이 밀집한 뒤로는 피해액이 천문학적으로 커져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었다.
적조가 발생하면 바닷물 색깔이 바뀌고 냄새가 나며, 어패류가 죽고 바닷물 속에 녹아있는 산소가 줄어들어 해양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적조를 일으킨 미세조류가 죽으면 썩게 되는데, 이때 물속에 녹아있는 산소가 줄어든다. 그러면 산소가 결핍되는 빈산소상태가 나타나 해양동물이 호흡 장애를 일으킨다. 또 적조 생물이 어패류의 아가미를 막아서 질식사시키기도 한다. 적조 생물이 분비하는 끈적끈적한 물질 때문에 어린 물고기는 헤엄치기가 힘들어지고, 독성 미세조류가 적조를 일으킬 때는 독성 때문에 물고기가 죽기도 한다. 독성이 있는 미세조류는 국민 건강에도 유해하다. 독이 들어있는 식물플랑크톤을 먹은 어패류를 잘못 먹으면 여러 가지 패독 증상이 나타나 몸이 마비되기도 하고 구토와 설사가 나며 기억을 잃는 일도 발생한다. 심지어는 패독 증상으로 사망하는 사고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적조가 발생하면 수산물 소비가 줄고 해양관광이 위축되어 경제적 손실이 커진다.
따라서 적조를 예방하거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다. 인공위성으로 찍은 사진을 분석하여 넓은 해역에서 실시간으로 적조를 감시하는 체계도 구축중이다. 비록 적조가 환경에 순응한 자연현상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적조 생물이 잘 자라도록 영양염류를 많이 배출하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부메랑은 던지면 되돌아온다.
하수구에 무심코 흘려버린 음식찌꺼기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바다의 침입자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다른곳에서 들어온 사람이 원래 있던 사람을 내쫓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우리나라 생태계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황소개구리나 파랑볼우럭(블루길)처럼 외국에서 들어와 담수 생태계를 훼손하는 외래종 생물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육상 생태계의 경우에도 일본을 거쳐 들어온 소나무재선충이나 솔잎흑파리가 소나무 숲에 미치는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해양생태계의 경우 외래종이 입히는 피해는 물론, 외래종의 현황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바다에서 유입되는 외래종은 대부분 선박 밸러스트수(평형수)나 배의 선체에 붙어서 들어온다. 세계 물동량의 80퍼센트 이상이 선박으로 움직이고 이 과정에서 선박의 안전 운항에 필요한 밸러스트수로 사용하는 바닷물의 양은 연간 100억 톤에 이른다. 해양생물은 선박의 밸러스트수 속에 무임승선하여 살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 이렇게 옮겨 다닌 생물종이 7000~1만 종 정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 가운데 토착 생물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바다의 침입자는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하여 세력을 키워나간다. 이민에 성공한 외래종은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나 기존 생태계를 훼손하고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킨다. 유용 수산생물을 훼손해 경제적 피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테즈메이니아(Tasmania)에서는 일본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아무르불가사리가 새로운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면서 기존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유용생물을 잡아먹어 사회문제가 되었다. 일본과의 무역 교류가 활발한 오스트레일리아는 밸러스트수를 통해 불가사리 유생이 유입된 것으로 판단하고 밸러스트수에 대한 사전 검사제를 강하게 요청했다. 이렇게 외국에서 유입된 외래종이 토착 생태계를 파괴하여 문제가 된 예로는 오스트레일리아 포트 필립(Port Phillip)만의 유럽산 꽃갯지렁이, 흑해의 일본산 피뿔고등과 북아메리카산 빗해파리 등이 있다. 흑해로 유입된 빗해파리 경우 어류의 먹이가 되는 동물플랑크톤을 대량 포식하는 바람에 어류의 먹이가 부족해져 어획량이 급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밖에도 밸러스트수를 통해 유입된 유독성 와편모조류를 먹은 조개를 식용한 사람이 패독증상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고,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밸러스트수 안에서 설사를 일으키는 콜레라균이 발견된 적도 있다. 이처럼 외부에서 유입된 생물은 생태계 훼손뿐만 아니라 공중보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바다에서도 외래종 홍합이나 따개비 종류가 등장했으나 구체적인 피해 사례는 보고된 적이 없다. 남해안에 서식하는 진주담치는 원래 남부 유럽에 살던 종으로 19세기에 일본으로 유입되었다가 한국으로 온 것으로 추측한다. 이 종은 우리나라 전 연안으로 서식지를 확대하고 있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국제해사기구(IMO)에서는 외래종의 유입에 따른 피해가 늘어나자 선박 밸러스트 수를 규제하기 시작했다.